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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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 원제 A Long Way Down (2005)
닉 혼비 지음 | 문학사상사


12월 31일, 고층 아파트 토퍼스 하우스 옥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죽고 싶은 사연이 있다. 유명 방송인이면서 10대 소녀와의 스캔들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은 마틴, 중증 장애아인 아들 때문에 평생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미혼모 모린, 유명 정치가의 딸이지만 집안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은 제스, 꿈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읽게 된 제이제이는 자살을 실행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오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와 친구를 얻게 된다...는 교훈적인 결론이다. '대담하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와 면도날 같은 위트'라는 소설보다 더 멋진 홍보 문구와 생전 책 한 권 안 읽는 친구의 "나같은 애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는 추천사에 넘어가서 읽긴 했지만, 여전히 내게 영미문학은 낯설다. 

책 속 구절 :
사실 포크너랑 디킨스를 읽긴 해도, 내가 피자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 멍청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최소한 학력은 제일 낮을 것이다. 우리 피자집에는 아프리카에서 의사였던 사람들, 알바니아에서 변호사였던 사람들과 이라크에서 화학자였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다(우리 사회에 피자와 관련된 범죄가 더 많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생각해보라. 내가 만약에 뭐, 짐바브웨에서 최고로 권위 있던 뇌수술 전문의인지 뭔지 그랬는데, 파시스트 정권한테 쫓겨나서 영국에 왔더니 약에 절어 지내는 10대 개자식한테 야식을 배달해 주며 새벽 3시에 굽실거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놈의 턱뼈를 부숴놔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어쨌든 패배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패배하는 데는 분명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러니 내가 피자 배달을 하고 있었던 것은, 영국이 후지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국 여자들이 후지고, 영국인이 아니라서 합법적으로 취직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스페인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엿 같은 핀란드 사람도 아니니까.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가 거기였다. (p.43~44)

그래서 모린, 제스, 마틴 샤프가 빈센트 반 고호를 따라 이 세상을 벗어나려는 참이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아, 물론 나도 빈센트가 북부 런던의 아파트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다). 누구네 집 파출부처럼 생긴 중년 부인과 소리를 질러대는 실성한 10대, 얼굴이 벌건 토크쇼 호스트……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살이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나 천재 가수 닉 드레이크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자살이란 이지적인 것이어야 했다. (p.46)

나는 펍에서 레몬을 넣은 진을 마시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한잔 살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대타 선수이니 자신들이 술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 술 때문에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날 저녁이 지나자 나는 3월 31일에 모두 만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그런 느낌, 이제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 나는 가급적 오랫동안 그 느낌을 꽉 붙잡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p.359)

그곳, 내가 12월 31일에 올라갔던 그 곳에 올라가면, 옥상 위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 건너 1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다는 없다. 거의 모두 다 마른 땅 위에서,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행복이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뭐 그런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 말은,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살과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실에서 지금처럼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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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5 11:18 2009/11/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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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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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원제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케빈 코넬 그림 | 노블마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갑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때문에 다들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노인으로 태어나 어린아이가 되어 죽는, 벤자민 버튼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지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 단편이고, 이 책은 그 단편을 만화로 그려낸 것입니다. 만화에 이어 소설이 이어지는데, 만화를 먼저 보게 되니, 한편으로는 굉장히 리얼하게 와 닿고(수염이 달린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아득함 속에 사라지는 갓난, 아니 곧 죽을 아기의 모습 따위),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즐거움이 사라져 아쉽기도 합니다. 갓난아이가 되어 죽는다고, 자신의 죽을 날을 알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태어났을 때 도대체 몇 살의 늙은이로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지금 내가 도대체 몇 살의 어린이만큼 늙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지만, 남들과 같은 꿈을 가질 수 없다는 건 좀 슬픈 일이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점점 젊어지는 자신과 달리 급속도로 늙어가는 부인을 바라봐야 한다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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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8:54 2009/06/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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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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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 원제 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 (2000)
(레이몬드 카버 지음 | 문학동네)


레이몬드 카버의 첫 번째 단편집. 2004년, 이 책이 국내에 재출간 되었을 때, 제목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끌렸던지. 동료들은 클라이언트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했다. -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미니멀리즘' '미국 중산층의 불안감' '의사소통의 단절' 같은 몇 가지 코드를 미리 알고 시작한다면 이 소설을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 어떤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체홉의 뒤를 잇는다는 이 작가의 내공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프랑스 시인 쟈끄 프레베르, 영화 감독 프랑소와 오종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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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2:13 2009/06/1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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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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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 원제 Amsterdam (1998)
이언 매큐언 지음 | Media2.0(미디어 2.0)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 그들이 암스테르담에 간 까닭은?" - 뒷 표지에 적힌 이 문구를 본 후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면, '몰리가 찍은 외무장관 가머니의 은밀한 사진'이 설마 그 사진일 줄 상상이나 했을까.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소재에 이 정도의 무게를 담은 작가의 힘이 놀랍다. 마약, 매춘, 안락사가 허용된다는 암스테르담에 간 두 남자와 그들을 추스릴 또 다른 두 남자 이야기가 결국 조지의 '미소'와 '달뜬 마음'으로 끝을 맺게 되다니.

책 속 구절 :
"신문 봤지?" 버넌이 말했다.
"죽여주던데요."
오늘 일반 신문과 타블로이드판을 포함한 모든 신문이 관련 기사를 싣지 않을 수 없었다. 캡션이며 급조해낸 기사에서 망설임과 시샘이 묻어났다. '인디펜던트'는 서로 다른 10개국의 사생활보호법에 관한 싱거운 기사를 실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는 한 심리학자가 크로스 드레싱에 관한 겉만 번들번들한 이론을 실었고, '가디언'은 두 페이지에 걸쳐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J. 에드거 후버의 사진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복장 도착 행위를 비웃으며 교조적 입장을 취했다. 그 가운데 어떤 신문도 '더 저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미러'와 '선'은 월트셔의 농장에 가 있는 가머니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두 신문 모두 외무장관과 그의 아들이 헛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롱 렌즈로 잡은 초점 흐릿한 사진을 실었다. 뒤로는 거대한 헛간 문이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빛이 가머니의 어깨로만 떨어져 팔이 어둠 속에 감춰진 그 사진은 기억 속으로 퇴장하게 될 한 남자의 모습을 암시했다. (p.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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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2:31 2009/05/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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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in 맨해튼


베이비 in 맨해튼 (전 2권) - 원제 Baby Proof

(에밀리 기핀 저 | 지식의 날개)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칙-릿 소설

J일보의 북 섹션에서 "개인적으론 최근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재미 있었습니다"라는 소개 문구를 읽고 긴 연휴기간 동안 읽을까 하여 별 다른 정보 없이 주문했다. 기자의 글을 좀 더 읽어보자면, "이 소설은 고액 연봉, 여행, 친구, 펀드, 유쾌한 시간, 질 좋은 와인, 재기 넘치는 대화 같은 것들을 거느린 플래티넘급 독신녀 클로디아가 주인공"이고, "책 홍보자료에는 (주인공이) 친구·가족들의 삶을 통해 자유와 사랑, 일과 결혼, 가족과 출산의 의미를 체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했지만, "(기자) 저보고 말하라면, 무엇보다 문장이 너무 깨소금이고, 심리묘사에는 척척 휘감기는 감칠맛이 있고, 정경이 부드럽고 차갑고, 에피소드가 너무너무 리얼하다고나 할까요"라는 칭찬이다. 이 정도면 극찬이다.

이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칙릿(Chick-lit)'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시작하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홀릭" 같은, 국내 작품으로 치면 "달콤한 나의 도시"같은, 젊은 여성(이왕이면 미혼의) 취향의 소설을 말한다. 책장이 무서운 속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600페이지쯤 되는 분량도 서 너 시간에 읽을 수 있으며,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 같은 소설.

"베이비 in 맨해튼"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주인공 클로디아가 자신과 생각이 같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를 바라기 시작한 남편과 갈등하다 결국 이혼을 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클로디아의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셋 있지만 부부 사이가 나쁘기도 하고, 아이가 없어 입양을 생각하기도 하며, 유부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임신을 계획하기도 한다. 결국 그 어느 쪽도 완벽하게 행복하진 못하지만, 주제는 '베이비' 쪽으로 기울어지며 해피엔딩. 이 책을 소개한 기자의 글 대로 '재미있는 소설'이긴 하다. '척척 휘감기는 감칠맛'이나 '너무너무 리얼'한 에피소드까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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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8 19:44 2008/02/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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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대지 (펄 벅 저 | 문예출판사)

땅의 내공

어린 시절, 깨알같은 글씨의 세로 쓰기로 된 "대지"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땐 이보다 더 두꺼웠던 것 같은데, 기억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으니 유감스러울 뿐이다. 어쩌면 1부(대지) 외에 2부(아들들)와 3부(분열된 집안)까지 함께 제본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니면서 이 분량(450페이지 남짓)의 소설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데, 추석 연휴 덕에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왕룽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끓인 물에 찻잎을 넣을까 말까를 망설여야 하는 가난한 살림에 읍내의 부잣집 여종인 오란이 숟가락을 보태게 된 것이다. 어릴 적 부모가 세도가에 팔아 넘겨 고된 종노릇을 시작한 오란은 박색에 발까지 커다랗기 때문에(어른 여자의 발이 10cm 정도인 전족의 시대였다!) 인기가 없었지만, 가난한 농부인 왕룽으로서는 그마저도 감사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읽을 때도 그랬고, 지금 읽어도 인상적인 건, 오란이 만삭의 몸으로 밭일을 하다가 진통을 느끼자 아이를 낳겠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출산을 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둘째도 그렇게 낳았고, 기근이 들어 낳은 아이는 낳자마자 죽어버린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며칠 씩이나 굶고, 그러다 죽을까봐 남쪽 땅으로 이동해 구걸까지 한 왕룽 일가가 첩실의 몸종까지 둘 정도로 흥하게 된 건 '땅' 덕이었다. 굶어 죽을지언정 땅을 팔지 않고, 돈만 생기면 우선 땅부터 사는 땅부자 왕룽 일가의 흥망성쇠는 '땅의 내공'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왕룽의 아들들이 땅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은 몰락의 징조가 되는것이다. 땅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왕룽의 부지런함과 검소함, 땅에 대한 애착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그만큼의 부자가 된 건 아니었다. 그 계기는 오란에게 있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처럼, 부잣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 오란이 아니었다면 왕룽의 인생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느 고전을 읽을 때처럼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부'에 대한 교훈도 얻을 수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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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3 21:22 2007/09/2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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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1984
(조지오웰 저 ㅣ 민음사)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것들

너무나 유명해서 별 말이 필요 없는 소설이다. 1984년, 개인의 자유는 커녕, 조작된 역사로 모든 사고思考마저 정지된 시대. '텔레스크린'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인간의 욕망마저 통제된 시대에 '거대 권력' 앞에서 저항하다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실감하고 마는 처절한 개인의 이야기이고, 전체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암울한 이야기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1948년에 씌여진 '미래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중 6월 항쟁 20주년 기념 행사와 토론회, 퍼포먼스가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펼쳐졌고, '권위주의만 무너진 게 아니라, 권위마저 무너져버려 대통령 욕하는 게 국민의 스포츠가 되어 버렸다'는 한 교수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2007년 봄, 이 땅의 '민주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런 시대에 소설 속 '통제'를 실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6월 항쟁 20주년, 1987年 6月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한 국회의원은 '정치의 권위주의는 해소됐지만, 시장의 권력'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지적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며칠 전 "구글 스트리트뷰"의 사생활 침해로 인한 논란이 불거지기도했다.

소설 "1984년"의 '텔레스크린'처럼 누군가가 계속 우리를 감시하며, 김규항 선생이 '밤의 주둥아리들'이라 표현한 '네티즌'은 어떤 대상이든 눈에 거슬리면 비판하고 까부순다. 부와 권력은 항상 어딘가에 치우쳐 있으며 여전히 '대다수'의 것은 아니다. '민주화'가 실현되었다는 판단도 유보할 것이지만, 설사 그 '민주화'가 활짝 피었다고 해도 "1984"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빅브라더'는 누군가에게 악몽처럼 계속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다.

책 속 구절 :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빅 브라더가 있다. 빅 브라더는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모든 성공, 모든 성취, 모든 승리, 모든 과학적 발견, 모든 지식, 모든 지혜, 모든 행복, 모든 덕성이 그의 지도력과 영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빅 브라더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벽에 나붙은 포스터 속의 얼굴과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보고 들은 것의 전부이다. 그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선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확실치 않다. 빅 브라더란 당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설정한 가공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집단보다 개인에게서 쉽게 느껴지는 사랑과 공포와 존경과 감동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빅 브라더 아래에는 오세아니아 인구의 2퍼센트도 안 되는 600만으로 구성원이 제한된 내부당이 있다. 그리고 내부당 아래에는 외부당이 있는데, 내부당이 국가의 머리라면 외부당은 그 팔에 해당될 것이다. 외부당 아래에는 '노동자'라 하여 전인구의 85퍼센트에 해당되는 벙어리 같은 대중이 있다. 앞에서 사용한 분류 용어를 쓰자면 노동자는 '하층계급'으로, 이 정복자에서 저 정복자의 손에 끊임없이 넘겨지던 적도 지방의 노예들이다. 그런 만큼 이들은 사회구조에 있어서 영구적이거나 불가결한 존재가 될 수 없다.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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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1 11:52 2007/06/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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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다빈치 코드
(댄 브라운 저 | 대교베텔스만)

급하게 읽다 체하겠다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느낌.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는 남자 주인공(로버트 랭던)에 쥴리 델피나 래티시아 카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여주인공(소피 느뵈)이 흥미진진한 로드 무비, 액션 영화를 찍고 있다. 물론 초특급 베스트셀러의 명성에 걸맞게, 영화를 찍어도 킬링 타임용이 아닌, 반전에 반전, 미스터리에 배신과 ‘충격적’이라는 결말이 잘 조화된 시리즈 고전이 나올 법 하다.

미국 소설은, 게다가 추리물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은 ‘다르다’며 동료의 추천이 들어왔다. 읽고 있는 동안에도 책 표지를 보며 주위에서 자꾸 아는 척을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주목하고 있는 듯 하다.

역시, 상당히 재미있어서, 두 권이나 되는 분량임에도 하나도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루브르 박물관’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 ‘기호학’이라는 코드가 사실 어려울 법도 한데, 이리저리 배배 꼬아버리지 않고 시원하게 전개했다. 답답한 마음이 들만 하면 결말을 내 버리고, 누가 곧 배신을 할 건지, 암호는 무엇을 의미하는 지, 중간 중간에 다 풀어준다. 성질 급한 사람을 배려한 훌륭한 소설(!).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지만, 사실 ‘소설’이라 생각하니, 별로 충격적일 것도 없다. – 충격으로 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더 황당하고 놀랍다 - 너무나 사실적으로, 이런 저런 근거를 제시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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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2 21:44 2004/08/2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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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건너뛰기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저 | 북@북스)

아.. 재밌는 소설...

존 그리샴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영화로 보면 될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는 별 매력이 없는 작가였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 수록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게 너무 멋없어진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상큼한 표지의 이 책을 발견했고, '어디 한 번... '하는 생각으로 집어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주말, 너무나 기분 좋은 하루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주말 오후, 푹신한 쇼파에 푹 파묻혀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 루터는 늘 반복되는 난리 법석에 쓸 데 없이 6천달러까지 소비되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려 했지만, 나는 오히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푹 젖어보고 싶었다. 트리도 없고, 장식도 없고, 선물도 없다. 나무에 줄전구를 달지도 않았고, 지붕에 프로스티를 세우지도 않았고, 매년 구입했던 경찰 달력과 소방관 생크림케이크도 사지 않았다...

그리고 열흘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유람선을 타고 카리브해에 가고 싶었다. 너무나 멋진 생각이 아닌가! 매년 반복되는 설날/추석을 맞이하는 며느리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이 소설은 금새 영화화 될 듯 싶다. 주인공들의 제스츄어나 대사가 헐리우드 배우들에 의해 바로 눈앞에서 재현되는 느낌이 든다. 내년 겨울방학 즈음엔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참, 이 책의 큰 단점이라면, 역자후기 부분에서 줄거리를 모두 다 말해버렸다는 것이다. 역자와 출판사의 큰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책을 읽는 독자도 있겠지만, 역자 후기부터 읽어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영화를 보기 전, '식스 센스'의 결말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먼저 읽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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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2 18:33 2002/12/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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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F.스콧피츠제럴드 저 | 문예출판사)

황당한 치정사건

줄거리로만 보자면 그렇다. 황당한 치정사건. 하지만 이 소설에는 그 이상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고 그 중심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사람을 죽였다', '전쟁중에 독일 스파이였다'... 는 등의 의혹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떠들어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변명 한 번 하지 않는 개츠비는 몇 번의 이력 번복으로 심지어는 독자들에게까지 신뢰를 잃었을지 모른다. 꼼꼼히 음미하지 않으면 그가 옛 연인 데이지에게 갖는 감정마저도 훨훨 날아가버려 포착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한 여인의 '부박한'(어디선가 읽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영혼에 희생되는 '위대함'에 뭉클함이 밀려온다. 그의 사랑은 '아름다움'일까, '헛됨'일까. 21세기 초, 이 시대에 이런 '위대함'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슬프다.

밑에서 여러 분들이 지적한 것 처럼, 이 책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화가 날 지경이다. 하루키 덕에 멋진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는, 그와는 관계 없이라도 많이 읽히는 작품일텐데, 믿을만한 출판사의 번역이 이 모양이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알타비스트 번역기라도 이용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작품이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분명 작품 도입 부분의 번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은 어떤지...
이 작품은, 10년 전 쯤 영화로도 접했는데 - 어딘가에서는 '미스 캐스팅'의 대표적 사례라 평하기도 했지만 - 참 좋았다. 약간의 지루함은 있지만, 책이 싫다면 영화로 보는 것도 좋을 듯. 영화를 본 후에는 책을 집어들게 될 것 같다.


책 속 구절 :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개츠비에게 갔을 때, 나는 당황하는 표정이 다시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걸 보았다 -- 마치 그가 현재 누리는 행복의 질에 대해 얼마간 의심이 생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거의 5년이라는 세월! 아닐 오후에 데이지는 그의 꿈을 허물어지게 하는 순간이 있었을는지는 모른다 -- 그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의 환상의 거창한 활력 때문에. 그 환상의 강력함은 그녀를 뛰어넘고, 모든 것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Posted by marian

2002/03/14 18:24 2002/03/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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