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원제 Die Glut)
산도르 마라이 지음 | 솔출판사
자궁 속 일란성 쌍둥이처럼 붙어 지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사십일 년 사십삼일이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친구가 떠난 뒤 처음에는 당황했고, 그 다음에는 복수를 계획했고, 그리고는 오랜 세월을 그냥 기다렸고… 모두 늙었다. 이제 그들의 나이는 일흔다섯이고, 장군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지켜본 유모 니니는 아흔한 살이다. 친구가 사라진 걸 공허하게 견뎌야 했던 장군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이미 삼십 년이 지났다. 마르께스의 소설처럼, 길고 긴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 이야기지만, 소설은 하루 밤에 일어난 일을 써 내려간 것이다. 친구인 콘라드가 되돌아 온 날 저녁 여덟 시부터 다음날 동이 터올 때까지 헨릭의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만 계속된다. ‘이 저녁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고, 오늘 저녁이 지나면 그리 많은 낮과 밤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 속에 수십 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세월은… 어쨌거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책 속 구절 :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이것이 질문일세. 아니면 선하든 악하든 신비스러운 어느 한 사람만을 향해서,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정열적일 수 있을까? 우리를 상대방에 결합시키는 정열의 강도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할 수 있으면 대답해주게.” (p.273)
Posted by marian



